첫 여행 이야기

생각 2016. 10. 31. 21:50

홀로하는 첫 여행은 대학교 4학년 때였다.

몇년간 투병하시던 아버지를 보내드렸던 3학년, 학기가 끝나가는 즈음 문득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결심했었다.

비행기도 한번 못 타봤으며, 국내 여행에 조차 전혀 취미가 없던 내가 그렇게 결심하고 나서, 휴학을 하고 미친듯이 밤낮으로 알바를 했다.


힘들었던 나에 대한 보상이었고, 현실의 탈출구였다. 여행을 다녀오면 모든게 해결될 줄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

누군가에겐 가벼운 여행일 수 있으나, 그 한달간의 여행이 나에게는 인생의 답으로 보였다.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 일정을 짜고, 소매치기에 대한 대비를 하고,

나에게는 매우 특별했으나, 남에게는 흔해보이는 여행을 준비했다.


여행의 길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생각을 교환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서 인생을 꿰뚫는 영감을 얻거나,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미친듯이 걸어다녔고, 밥은 주로 길거리에서 때웠다. 

여행기간동안 계속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끔은 왜 내가 비싼 돈 들여 사서 고생을 하고있는지 후회하기도 했고, 먼저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나의 소심함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내가 찾고자 했었던 답은 얻지 못했다.

마치 잠시 꿈을 꾼 것처럼, 한국의 모든것은 제자리에 있었다. 

한달의 강행군과 장거리 비행으로 지쳐 며칠을 골골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학교에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을 했다.


그렇게 다시 일상의 시간을 보내며 문득 돌아봤을때, 여행에서의 기억을 자꾸 곱씹는 나를 발견했다.

아침 런던의 찬 공기나 지하철 안내방송, 낯선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이야기, 끼니를 때우기 위해 산 더럽게 맛없는 샌드위치따위의 기억이 점점 아름답게 선명해져갔고, 그런 아름다운 기억들이 내 인생을 조금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 때문에, 여태까지 꽤 여러번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취미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사진은 첫 여행 런던 도착 당일 저녁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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